김태희는 조민재, 신승주, 박민혜, 새로운 질서와 함께합니다.
김태희는 본인이 전생에 케로베로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. 김태희의 몸통에 달린 세 개의 머리는 각각 김태희1/3, 김태희2/3, 김태희3/3으로 불린다. 성격에 따라 세 개의 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지만, 세 갈래의 머리-부분으로 불리기보다는 몸통으로 불리기를 선호한다.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김태희 1/3은 시각예술가, 김태희 2/3는 전시기획자이다. 김태희2/3은 좋은 작품을 만나면 갑자기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한다.
김태희 3/3은 김태희1/3과 김태희 2/3의 협의 결과 아직은 정체를 밝히기 부끄러운 상태라고 판단하였다.
김태희1/3은 대학교 졸업 후 약 3년간 방황 했다고 한다.
(무엇보다도 석관동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나?)
그 때 김태희1/3이 꾸었던 꿈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.
예술 세계의 진입로로 추정되는 커다란 문 앞에 두 명의 동기들이 문지기처럼 서 있었다고 한다.
김태희1/3은 예술 세계가 매우 추울 것으로 예상하고, 덜덜 떨면서 온 몸에 두꺼운 오리털 패딩과 솜바지를 둘렀다.
(목도리와 장갑, 모자도 잊지 않았다.)
두 명의 동기 중 김태희1/3에게 믿을만한 언니로 인식 되었던 여성이 별 일 아니라는 듯 “여기 그렇게 춥지 않아. 들어와.”라고 했으나
겁이 많은 김태희1/3은 이후 3년간이나 주저 했다.
(다만 미술 언저리를 열심히 기웃거리며 단체전과 프로젝트성 모임으로 근근히 명맥을 이어갔다.)
사회에서 착실히 돈벌이를 하는와중 구석에 쭈그려져 있던 김태희1/3은 2018년 드디어 ‘그 문’을 열기로 마음먹었다.
작업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3년간, 김태희1/3은 마음이 괴롭다는 SOS신호를 인지했다.
김태희1/3은 “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해”라고 지속적으로 김태희의 몸통에게 되뇌었다.
설상가상으로 망각의 동물이었던 김태희의 몸통은 학부시절 기억을 미화하기 시작했다.
열정을 바쳤던 (그러나 건강을 잃었던) 그때가 멋있어 보였고 다시 ‘그 석관동’으로 향했다.
아이러니하게도 이 ‘석관동’에서 김태희 2/3이 탄생했다.
석관동에서의 배움은 김태희 3/3의 탄생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, 김태희 1/3의 자양분을 마련하는 것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.
배움의 과정에서 김태희 2/3이 될 유기체는 동료들과 함께 몇 개의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다.
이 경험 속에서 김태희 1/3의 주 관심사는 아니지만, 작품으로 풀기에는 부족한 주제를 묶어 전시 기획으로 풀어가는 일이 꽤 재미있었다.
단지 그 이유로... 본격적으로 전시기획을 시작했다.
이후 김태희 1/3, 2/3, 3/3이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쓰며 인생을 저글링하듯 운용하고 있다.
세 개의 머리가 따로 또 같이 묶이며 2인 3각 경기를 펼치다,
2022년에는 김태희의 몸통이 돌연 김태희 1/3, 2/3, 3/3을 한 자리에 소집해 세 개 모두 한꺼번에 달릴 순 없겠냐고 역정을 내었다.
이렇게 지체되어서는 이도 저도 안된다나?
(이런 내부 사정으로 가끔 김태희 2/3과 김태희 3/3이 교체 되기도 한다.)
어찌되었든 세 개의 머리를 달고 걷거나 뛰는만큼 무엇을 일구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.하지만 세 개 모두 나름의 이유로 몸통 김태희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기에, 세 개의 하모니가 의미있는 발걸음이 되기를 노력할 뿐이다. 예상대로 세 개의 머리를 지탱하는 몸통이 매우 고군분투 하고 있다. 그런데 김태희의 몸통은 “역량이 닿는대로 물 흐르듯 쓰이다 종국에 하얗게 태운 재가 되는데 이만한 일이 없지”라며 나름 만족하는 듯 하다.(몸통이 말은 그렇게 하는데 가끔 제멋대로 파업을 해서 조금 애를 먹고있다.)
이 욕심많은 인간의 말로는 어떻게 될까?
일단,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 원리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피곤한 성격 때문에 이렇게 웹에 거처를 마련했고…….